“제오야. 너는 정말 귀족이 쓰러지면 세상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니?” “도시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고 그나마 일어났던 폭동은 또다시 밀고에 의해 진압되었어.” “모두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눈이 멀어서, 이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거야.” “카니스를 욕하는 사람들은 카니스가 되지 못한 사람들일뿐. 모두가 기회가 된다면 카니스가 되고 싶어 해.” “이런 도시가 귀족 하나가 쓰러지면 바뀔 거 같아? 아니, 결국 레지스탕스가 또 다른 귀족이 될 뿐이야.”
“제오 너는 어때?” “너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지? 어째서 귀족과 싸우는 거야?” “장사꾼이던 내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지. 공의를 논하는 자와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공의 뒤에 숨겨진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까.” “대의니 뭐니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결국 사람은 개인적인 사연이나 목표에 따라 움직일 뿐이야.” “선택이라는 건 본래 그런 것이니까.”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사장님. 저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대단한 이유 따윈…” “예전에 눈앞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혹은 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웠었어요. 귀족을 쓰러뜨리고 세상을 바꾸겠다? 그런 생각은 솔직히 안중에 없었습니다.” “다만 배운 점이 있다면 이거죠. 옳은 일을 하는데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지금은 들려드릴 수 없네요. 제가 싸우는 이유, 제 선택의 목적을.” “저에겐 아직 옷을 만들어주지 않으셨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사심 가득한 목적인 절 도와주시겠습니까?”
“자책하지 않을, 소중한 사람을 지킬 힘을 갖는다 해도 타인의 신뢰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군요.”
“알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아볼로니아에서 믿음을 바란 것이 바보 같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기억해주십쇼.” “지금이 그 불신의 종착역임을.”
“사장님은 신고보단 제가 스스로 물러나 주길 바랐던 겁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잘못은 아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야.” “너희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 되는 선택을 했을 뿐이니까.” “다만 합리적일 뿐, 정답은 아니었지.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 그럼 다시 선택의 순간이다. 난 지금부터 저택으로 갈 거야. 따라올지 말지는 알아서 정해라.” “그리고 이번엔 부디, 합리적인 답이 아닌 정답을 고르길 빈다.”
“괴물들을 만나게 될 거다. 그런 무른 태도로는 버틸 수 없을 거야.” “너 또한 괴물이 되지 않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