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으뜸의 얼굴은 세상을 살아갈 이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하고 후련해 보였기 때문에.
“인간 아니랄까 봐 무척이나 오만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너의 의지가 신의 의지보다 상위에 있다는 말을 하는 거냐? 티토는 지금까지 널 용인한 것뿐이야. 모든 건 결국 신의 뜻대로 된다.”
“인간들은 할 줄 아는게 의심뿐이야. 그 의심을 모두 종식하려면 내가 말로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몸소 한 번 깨닫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더군.”
“신의 의지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너도 이제 깨달을 때가 왔어. 때로는 신이 예비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애완견처럼 사랑받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들만이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는 논리가 너무도 역설적이었다.
사람을 죽인다.
그건 내 머릿속에서 전혀 성립될 수 없는 명제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프레이는 괴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자란 존재였다. 그들을 내 손으로 죽이게 되면 아마도 남은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들을 생각하겠지. 스킬을 제어하기도 바쁜 상황에 대의니 도덕이니 깊이 생각할 정신이 없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그게 다였다.
악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처음으로 그런 후회가 들었다. 내레이션 박스를 봤을 때 티토는 <법치주의> 퀘스트를 무사히 성공시켜 줄 생각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 모든 참혹함이 내 보잘것없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부러 눈매를 찌푸렸다. 울지 마. 울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헌터가 헌터이기 이전에 인간인 것처럼 프레이 역시 인간인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 대원칙을 넘어선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를 갈망하는 존재는 비단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A급 스킬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그보다 못한 스킬로도 지금까지 잘해 온 데다가,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나를 어떤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