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가 헌터이기 이전에 인간인 것처럼 프레이 역시 인간인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 대원칙을 넘어선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를 갈망하는 존재는 비단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A급 스킬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그보다 못한 스킬로도 지금까지 잘해 온 데다가,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나를 어떤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지 알 수 없었다.
티토는 왜 나한테 이런 스킬을 준 거지. 기어코 나를 악역으로 만들 생각인 건가. 창조주의 의지에 거역하는 방법이 존재하긴 할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죽이면 안 돼.”
나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다시피 말했다. 심정은 이해되더라도 사람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것이다. 그걸 아득히 초과했기 때문에 이동흠 역시 죽고 나서도 이런 일을 겪은 셈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돼.”
나는 왜 그렇게까지 무모하게 사람들을 구했던 거지? 할머니 대신 지킬 누군가를 찾으려고? 그런 일로 스스로를 달래려고 했나? 매캐한 공기 탓에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죽어라 심호흡했다. 여기는 나의 세계가 아니다. 나가야 했다.
“나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슬퍼. 그리고 쓸쓸해.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한테 무의미하지는 않단 말이야.”
조금의 슬픔이 묻었다는 이유로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게 된다면, 내가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할머니와의 시간은 거의 없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범벅된 그 기억은, 역설적이게도 나 같은 애도 누군가에게 그토록 사랑받았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게 나을 정도로 슬픈 기억이라고 해도, 나는 그게 죽도록 필요하다고…….”
그날 난 깨달았어. 사람의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는 걸. 그래서 속여줄 필요가 있어. 큰 문제에 부딪히면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 하는 거야.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그래서 그게 문제를 해결해 줬어? 아니,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얻었지.
친구는 있었니? 네. 있었어요. 많았어? 네. 기억나? 네. 기억나요. 어떻게 됐니? 죽었어요. 전부? 네. 전부요. 보고 싶니? 네. 보고 싶어요. 어디로 갈까? 남쪽으로 가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