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반가웠던 것도 잠시, 나는 내 정신 건강을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고 있는 신들 때문에 살짝 기분이 상해 버렸다. 마음이 지극히 불안한 것 빼고는 딱히 아픈 곳도 없었다. 헌터들이 내게 구현 무기를 시험하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이벤트였고. 나는 악역의 길을 걸을 리가 없는 착한 사람이다. 할머니도 내게 착하다고 몇백 번이나 말했다. 내 이름이 순우인 건 태몽에 나왔던 송아지 눈이 너무 착하게 생겨서 그랬다고 했었지. 그 태몽이 너무 선명해서 내 이름까지 그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니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나 선한 캐릭터로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아닙니까?”
최으뜸의 얼굴은 세상을 살아갈 이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하고 후련해 보였기 때문에.
“인간 아니랄까 봐 무척이나 오만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너의 의지가 신의 의지보다 상위에 있다는 말을 하는 거냐? 티토는 지금까지 널 용인한 것뿐이야. 모든 건 결국 신의 뜻대로 된다.”
“인간들은 할 줄 아는게 의심뿐이야. 그 의심을 모두 종식하려면 내가 말로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몸소 한 번 깨닫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더군.”
“신의 의지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너도 이제 깨달을 때가 왔어. 때로는 신이 예비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애완견처럼 사랑받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들만이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는 논리가 너무도 역설적이었다.
사람을 죽인다.
그건 내 머릿속에서 전혀 성립될 수 없는 명제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프레이는 괴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자란 존재였다. 그들을 내 손으로 죽이게 되면 아마도 남은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들을 생각하겠지. 스킬을 제어하기도 바쁜 상황에 대의니 도덕이니 깊이 생각할 정신이 없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그게 다였다.
악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처음으로 그런 후회가 들었다. 내레이션 박스를 봤을 때 티토는 <법치주의> 퀘스트를 무사히 성공시켜 줄 생각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 모든 참혹함이 내 보잘것없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부러 눈매를 찌푸렸다. 울지 마. 울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