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은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한 컷으로 요약된 공포스러운 상황 뒤에 자리한 슬픔의 크기를 모른다. 게이트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악다구니가 울리는지, 희생자 명단을 확인하는 늙은 부모가 어떤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는지, 하반신을 잃은 자가 무엇을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지, 전혀 모른다. 창조주의 유희 추구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분노와 혐오감이 뒤섞여 단전에서 진탕 끓어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연들의 죽음은 세계관의 분위기를 떠받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티토의 헛소리에 정면으로 반항하고 싶었다. 어찌 되든 나는 자살하겠지만, 그 결말까지 도달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현소라만큼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수많은 목숨들이 살아가고, 결코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그 무게가 정해지지 않는 진짜 세계이다. 신이라고 해서 그걸 모욕할 권리는 없다.
강차경의 옅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였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슬퍼 보였다. 신의 총애를 받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외로운 인생을 헤치고 살아온 불행한 영혼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내 이어진 말을 듣는 순간,
“죽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는 거지?”
나는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신 사람처럼 호흡을 멈추었다.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마치 누군가를 애도하듯이.
“그래서 어쩔 수가 없는 거지?”
“순우 학생. 나를 죽이고 싶어요?”
죽이고 싶었다. 마치 내 마음을 모두 안다는 것처럼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티토는 전에덴의 얼굴 옆에 ‘맹순우는 구원자이자 메시아였다. 그런 자에게 원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을 쳐 넣는다.」
“하지만 순우 학생이 원한다면, 나는 순우 학생의 죄악까지도 책임질게요. 가장 값진 사랑은 희생에서 오거든요.”
장갑을 낀 전에덴의 손이 총신을 훑듯이 쓸어 내리더니, 이내 권총을 쥐고 있는 내 손등을 완전히 덮었다.
“순우 학생. 사랑이라는 건, 모든 걸 바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이제 그걸 완벽히 이해했어요.”
나와 전에덴의 새카만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전에덴의 손가락은 방아쇠 위에 걸쳐져 있던 내 검지를 순식간에, 그리고 부드럽게 눌렀다.
“당신은 내 완전무결한 메시아니까…… 당신을 위해 희생할게요.”
내게는 도망칠 낙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협박은 내게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어차피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인간이 아닌가. 잠시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나는 이렇다 할 고저 없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내 복수를 도와줄 수 있어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던 김무녕은 행동을 멈추고서 나를 돌아보았다. 내 시선과 김무녕의 시선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맞닿았다.
“나는 신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마치 메시아처럼. 원수에 대한 미움으로 각성한 이들과 다르게, 맹순우가 미워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었으니. 가시나무에서 자라는 포도만큼 기이하고도 확실한 신의 증표는 없으리라. 이 끔찍한 기억을 잊게 된다는 건 찬란한 축복이다. 내 더러운 죄를 더 이상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악마와의 계약이 시작된 것이다.
“정말로 죽어 마땅하네. 지옥에 가야 마땅해.”
세계 바깥에서 나를 구경하고 있는 신들은 즐거울 것이다. 비극은 필연적으로 외부인에게 가학적인 즐거움을 안기기 마련이니까. 티토는 오로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나를 만들어 냈다. 내 인생은 그토록 부조리한 비극이다. 그러나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 같은 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일 수 없다. 과거의 죄를 알게 된 후에도 힘겹게 나를 지탱해 온 하나의 끈이 형편없이 끊어지는 순간, 심장에 얽힌 원죄가 맹렬히 박동했다. 애초에 신의 편애 같은 건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존재였으니까. 신의 사랑이란 건 때때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법이다. 유리에 비친 내 눈동자는 핏물처럼, 괴수처럼, 그리고 녹은 유리처럼 붉었다.
그 모든 것들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뭉쳐져 나를 깔아뭉갰다. 유년 시절의 작은 기쁨과 행복, 켜켜이 쌓인 내리사랑은 슬픔과 우울 앞에 무력하게 조각났다. 고등학교 입학을 몇 달 앞두었을 때, 나는 그것에 압도당해 있었다. 겉으로만 평범한 동급생들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을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십여 년간 응축되고 구겨진 본심이 내장 속에서 악을 썼다. 무심코 쏘아 대고 싶은 말을 어렵사리 삼키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도우미 아주머니의 살림살이라고 우리보다 특별히 나을 리는 없다.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끼리 죽어라 물어뜯고야 마는 상황이 흉곽을 거세게 짓눌렀다. 어떤 비극은 정교한 태엽 장치처럼 기막히게 맞물려 작동하기 마련이었다. 마구 흉통을 울려 대는 심장 박동을 견디며 마우스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내 시선은, 이내 하나의 문장에 멎고 말았다.
피해자 발견 장소, 현관. 현관. 현관. 현관.
두 음절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반복되었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번져 가는 화염과 새카만 연기, 살을 익히는 열풍 속에 갇혀 버린 할머니의 영상이 제멋대로 뇌리에 재생되었다.
내가 할머니를 불태워 죽인 것이다.
3년 내내 마음을 갉아먹던 의심이 마침내 확고한 진실이 되어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죽어 마땅한 인간에게는 자살이 선고되었다.
친구들이 실종될까 봐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 하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그 불안이 현실로 옮겨지는 순간까지 그려졌으니…….. 남은 건 진짜로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폐쇄 병동에 발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곧 1부가 끝난다며. 1부가 있다는 건 최소한 2부, 아니면 3부까지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 확실히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는 하지. 그런데 무너진 멘탈이야 2부에 다시 쌓아 올리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맞는 말이야. 나는 성장형 캐릭터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속으로 자문자답하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빵을 씹어 넘겼다.